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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오브 워(2018) 리뷰: 분노에서 성찰로, 한 아버지의 재탄생

폭풍의 게임리뷰 2025. 10. 24. 03:25

갓오브워(2018)

개요 북유럽 신화를 배경으로 한 액션 어드벤처 게임. 그리스 신화의 복수극에서 벗어나 아버지와 아들의 여정을 그린 시리즈의 소프트 리부트작.

출시일 및 플랫폼 2018년 4월 20일 / PlayStation 4 (2022년 PC 버전 출시)

게임회사 개발: Santa Monica Studio / 배급: Sony Interactive Entertainment

게임장르 액션 어드벤처, 3인칭 액션 RPG

난이도 하 ~ 극상 (4단계 난이도 선택 가능, '신에게 도전' 난이도는 극도로 높은 난이도 제공)

플레이 타임 메인 스토리: 약 20~25시간/ 100%완료: 약 40~50시간 


새로운 신화, 새로운 크레토스

처음 컨트롤러를 잡고 숲속을 걷는 순간, 나는 이것이 내가 알던 '갓 오브 워'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과거 그리스 신화 3부작에서 신들의 목을 찢고, 올림포스를 불태웠던 그 크레토스는 이제 북유럽의 혹독한 설원 속에서 나무를 베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혼돈의 칼날 대신 무거운 도끼 '레비아탄'이 쥐어져 있었고, 그의 어깨 너머로는 어린 아들 아트레우스가 조심스럽게 뒤를 따랐다.

이 게임은 단순한 배경 전환이 아니다. 이건 한 남자의 정체성을 완전히 재정의하는 여정이었다. 과거 분노로 세상을 찢었던 전쟁의 신은 이제 말수가 줄었고, 매 순간 자신의 과거를 억누르며 아들에게 더 나은 아버지가 되려 애쓰는 한 사람의 인간이 되어 있었다. 아내의 유언을 따라 그녀의 유골을 아홉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뿌리기 위한 여행은,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장례 의식이지만, 실제로는 크레토스 자신이 과거의 괴물에서 벗어나 진정한 아버지로 거듭나는 과정 그 자체다.

게임을 시작하고 처음 몇 시간 동안, 나는 크레토스의 침묵이 불편했다. 과거 그는 고함을 지르고, 분노를 표출하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이제 그는 아들 앞에서 감정을 숨긴다. "보이(Boy)"라고 아들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엔 거리감이 묻어 있었고, 아트레우스가 실수할 때마다 그는 차갑게 질책했다. 하지만 그 냉정함 뒤에는 '내 과거를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절박함이 숨어 있었다. 여정이 깊어질수록 두 사람 사이의 벽은 조금씩 허물어졌고, 크레토스는 자신의 과거를 조금씩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억지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어느 순간 나는 크레토스가 아들을 이름으로 부르는 장면에서 목이 메었다.

북유럽 신화를 배경으로 선택한 것도 탁월했다. 그리스 신화가 웅장하고 비극적이었다면, 북유럽 신화는 거칠고 음울하며 운명론적이다. 미드가르드의 설원, 알프헤임의 빛과 어둠, 헬헤임의 냉혹한 죽음의 세계까지, 각 지역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크레토스의 내면을 반영하는 거울이었다. 특히 '세계수 이그드라실'을 통해 여러 세계를 오가는 구조는 탐험의 재미를 배가시켰고, 각 세계마다 숨겨진 신화적 요소들을 발견하는 과정은 마치 고대 유적을 탐사하는 듯한 경이로움을 선사했다.

원테이크 카메라가 만든 기적

'갓 오브 워(2018)'의 가장 혁신적인 연출은 단연 '원테이크 카메라'다. 게임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엔딩 크레딧까지, 단 한 번의 화면 전환이나 컷 없이 모든 장면이 끊김 없이 이어진다. 처음엔 이게 단순한 기술적 과시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몇 시간을 플레이하고 나자, 이 연출이 얼마나 서사적으로 중요한 선택이었는지 깨달았다.

원테이크 카메라는 플레이어를 크레토스의 시선 안에 완전히 가둔다. 전투 중에도, 컷신에서도, 탐험 중에도 카메라는 절대 크레토스를 놓치지 않는다. 덕분에 나는 단순히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 아니라, 크레토스라는 인간의 삶을 '살아가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특히 인상 깊었던 순간은 크레토스가 아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적의 기습을 받는 장면이었다. 카메라가 끊기지 않기 때문에, 그 긴박감과 혼란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일반적인 게임이었다면 컷신이 끝나고 전투 모드로 전환되는 순간이 있었겠지만, 이 게임은 그런 경계선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이 연출은 전투에서도 빛을 발했다. 도끼를 던지고, 손짓 한 번으로 도끼를 회수하는 감각은 기가 막혔다. 도끼가 날아가는 궤적, 적의 머리에 박히는 순간의 묵직한 타격감, 그리고 손바닥으로 되돌아오는 순간의 짜릿함까지, 모든 동작이 하나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방패로 패링하고, 맨손으로 적의 목을 부러뜨리고, 다시 도끼를 소환해 다음 적을 베는 일련의 과정이 마치 한 편의 무용처럼 흘러갔다. 이건 단순한 전투 시스템이 아니라, '전투의 춤'이었다.

숄더뷰 시점도 몰입감을 극대화했다. 기존 시리즈의 고정된 탑뷰 시점과 달리, 이번엔 크레토스의 어깨 너머로 세상을 바라봤다. 덕분에 전투는 더 긴장감 있고, 탐험은 더 몰입적이었다. 하지만 이 시점은 양날의 검이기도 했다. 주변의 적을 파악하기 어려워 뒤에서 기습당하는 일이 잦았고, 좁은 공간에서 여러 적을 상대할 땐 카메라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 발키리 보스전처럼 빠른 템포의 전투에선 시야 확보가 생존의 핵심이었는데, 이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았다.

그럼에도 원테이크 연출이 주는 몰입감은 그 모든 불편함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게임이 끝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 게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의 인생'을 보여주려 했던 거였다. 인생은 컷이 없다. 전투가 끝났다고 해서 숨 돌릴 틈이 주어지지 않고, 슬픔이 밀려와도 멈출 수 없다. 크레토스의 여정이 그랬고, 이 게임의 카메라도 그걸 정직하게 담아냈다.

전투, 그리고 성장의 무게

이전 시리즈를 즐겼던 팬으로서, 처음 전투 시스템을 접했을 땐 당혹스러웠다. 과거의 화려한 콤보와 빠른 템포의 액션은 사라졌고, 그 자리를 묵직하고 신중한 전투가 대신했다. 혼돈의 칼날은 사라지고 레비아탄 도끼만 남았다. 처음엔 이 변화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이건 단순한 시스템 변경이 아니라, 크레토스라는 캐릭터의 변화를 게임플레이로 구현한 것이었다.

도끼를 휘두를 때마다 느껴지는 무게감은 압도적이었다. 과거 혼돈의 칼날이 분노와 광기를 상징했다면, 레비아탄은 인내와 절제를 요구했다. 적을 한 방에 베어버리는 대신, 타이밍을 재고, 거리를 조절하고, 적의 패턴을 파악해야 했다. 방패를 들고 적의 공격을 패링하는 순간의 쾌감은, 과거 수십 콤보를 때려넣는 것보다 더 짜릿했다. 이건 더 이상 '복수귀의 전투'가 아니라, '아버지로서의 전투'였다. 아들을 지키기 위해,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움직여야 했다.

아트레우스와의 협동 전투도 게임에 새로운 차원을 더했다. 처음엔 단순히 버튼을 눌러 화살을 쏘게 하는 정도였지만, 게임이 진행될수록 아트레우스는 점점 더 강력한 전투 파트너로 성장했다. 그가 적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동안 내가 결정타를 날리거나, 내가 방어에 집중하는 동안 그가 원거리 딜을 넣는 식의 전략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특히 아트레우스가 룬 화살로 적을 기절시키고, 내가 그 틈을 노려 처형 기술을 발동하는 콤비네이션은 백 번을 해도 질리지 않았다.

장비 시스템도 전투에 깊이를 더했다. 갑옷, 탈리스만, 마법 부적 등 다양한 장비를 조합해 자신만의 빌드를 만드는 재미가 쏠쏠했다. 나는 주로 룬 공격 쿨타임을 줄이고 공격력을 극대화하는 공격형 빌드를 선호했지만, 방어와 체력 회복에 집중한 탱커형 빌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특히 후반부에 얻을 수 있는 전설 장비들은 단순히 스탯만 올려주는 게 아니라, 전투 스타일 자체를 바꿔놓을 만큼 강력했다.

하지만 전투에도 아쉬운 점은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적의 다양성 부족이었다. 초반에 등장하는 드라우그르(언데드)는 게임 내내 반복적으로 등장했고, 색깔만 바뀐 채 강화된 버전으로 재탕됐다. 트롤 보스전도 마찬가지였다. 첫 번째 트롤과의 전투는 긴장감 넘치고 흥미진진했지만, 세 번째, 네 번째 트롤을 만났을 땐 '또야?'라는 한숨이 나왔다. 패턴은 거의 동일했고, 색깔과 속성만 다를 뿐이었다. 보스전의 컷신도 매번 비슷해서, 처음엔 멋있었던 연출이 나중엔 스킵하고 싶을 정도로 지루해졌다.

그럼에도 전투의 기본 골격은 탄탄했다. 난이도를 '신에게 도전'으로 올리면 완전히 다른 게임이 됐다. 모든 적이 두세 방에 나를 죽일 수 있었고, 방어와 회피가 생존의 핵심이 됐다. 특히 발키리 여왕 시그룬과의 전투는 내 게임 인생에서 손꼽히는 난이도였다. 수십 번을 죽고 다시 도전하면서, 나는 단순히 버튼을 누르는 게 아니라 그녀의 모든 패턴을 머리와 몸에 각인시켜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를 쓰러뜨렸을 때의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손이 떨렸고,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이런 순간을 위해 우리는 게임을 하는 게 아닐까.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신화

이 게임의 진정한 핵심은 크레토스와 아트레우스의 관계다. 처음 둘의 관계는 어색했다. 크레토스는 아들을 이름 대신 "보이"라고 불렀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트레우스는 아버지의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했지만, 크레토스는 그저 차갑게 훈련만 시켰다. 초반의 이 불편한 거리감은 의도된 것이었다. 크레토스는 자신의 과거,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행위들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벽을 쌓았고, 감정을 숨겼다.

하지만 여정이 깊어질수록 그 벽은 조금씩 무너졌다. 미미르를 만나고, 프레이야와 대화를 나누며, 크레토스는 조금씩 자신의 과거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특히 헬헤임에서 자신의 과거 환영과 마주하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아테나의 환영이 나타나 "넌 변할 수 없어, 넌 괴물이야"라고 속삭일 때, 크레토스는 그걸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그랬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 장면에서 나는 크레토스가 진정으로 변했다는 걸 확신했다. 그는 과거를 부정하는 대신, 인정하고 극복하는 길을 택했다.

아트레우스의 성장 또한 인상적이었다. 초반의 그는 미숙하고 불안정한 소년이었다. 처음으로 사슴을 죽이고 죄책감에 시달렸고,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여정을 거치며 그는 전사로, 그리고 한 명의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했다. 특히 중반부에 자신이 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의 변화가 흥미로웠다. 그는 오만해졌고, 크레토스의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다. 이 갈등은 단순한 사춘기 반항이 아니라, 정체성의 혼란에서 오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리고 크레토스는 그걸 이해하고, 인내하며 기다렸다.

게임의 클라이맥스에서 드러나는 아트레우스의 진짜 이름 '로키'는 모든 걸 바꿔놓았다. 북유럽 신화에서 로키는 속임수의 신이자, 라그나로크를 불러올 존재다. 이 반전은 단순히 충격을 주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다. 이건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서막이었고, 크레토스와 아트레우스가 맞닥뜨릴 운명의 예고편이었다. 게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벽에 그려진 예언의 벽화를 보며 나는 소름이 돋았다. 크레토스가 아들의 품에서 죽는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 이게 정말 미래인가, 아니면 바꿀 수 있는 운명인가. 그 질문은 속편까지 이어질 거대한 떡밥이었다.

북유럽 신화의 활용도 탁월했다. 오딘의 까마귀들이 끊임없이 우리를 감시하고, 프레이야는 과거의 상처로 괴로워하며, 발두르는 어머니의 저주로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각 캐릭터는 단순한 신화 속 인물이 아니라, 저마다의 상처와 욕망을 가진 입체적인 존재로 그려졌다. 특히 발두르와의 최종 전투는 단순한 보스전이 아니라, 두 비극적 인물의 충돌이었다. 발두르는 감각을 되찾기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준비가 돼 있었고, 크레토스는 그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칼을 들어야 했다. 그 순간 크레토스는 또다시 신을 죽이는 자가 됐고, 그 무게는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디테일이 만든 살아있는 세계

'갓 오브 워(2018)'는 메인 스토리만큼이나 세계관 구축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미드가르드를 탐험하며 발견하는 수많은 서브 퀘스트와 수집 요소들은 단순한 콘텐츠 채우기가 아니라, 세계에 깊이를 더하는 장치였다. 특히 '예거의 영혼'을 해방시키는 퀘스트는 각각이 하나의 짧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고, 그들의 비극적인 운명을 알아가는 과정은 감정적이었다.

발키리 전투도 빼놓을 수 없다. 총 아홉 명의 발키리는 게임에서 가장 어려운 도전 과제였다. 각 발키리는 고유한 패턴과 전략을 요구했고, 그들을 모두 쓰러뜨린 후 마주하는 여왕 시그룬은 그야말로 절망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녀를 쓰러뜨렸을 때의 보상,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은 성취감은 게임의 모든 고난을 보상하고도 남았다.

난쟁이 형제 브록과 신드리도 게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둘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 저마다의 개성과 이야기를 가진 캐릭터였다. 브록의 거친 말투와 신드리의 결벽증은 코믹 릴리프 역할을 했지만, 동시에 게임 세계를 더 사실적으로 만들었다. 특히 레비아탄 도끼의 비밀을 알게 되는 순간, 이 도끼가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깊은 역사를 가진 유물이라는 걸 깨달았다.

미미르의 존재도 빼놓을 수 없다. 목만 남은 그는 여정 내내 우리와 동행하며 북유럽 신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의 해설은 단순히 정보 전달을 넘어서, 세계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배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미미르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는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고,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게 만들었다.

음악도 게임의 몰입도를 극대화했다. Bear McCreary가 작곡한 사운드트랙은 북유럽 신화의 웅장함과 비장함을 완벽하게 담아냈다. 특히 메인 테마의 저음 합창은 듣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일었고, 전투 음악은 아드레날린을 폭발시켰다. 조용한 순간의 서정적인 멜로디는 크레토스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그래픽도 당시 기준으로 최상급이었다. PS4로 구현해낸 눈 덮인 산맥, 호수의 물결, 헬헤임의 음울한 안개까지, 모든 것이 숨 막히게 아름다웠다. 특히 빛의 표현이 압권이었다. 알프헤임의 찬란한 빛과 어둠의 대비, 요툰헤임의 황량한 설원에 비치는 석양은 스크린샷을 찍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괴물에서 인간으로, 그리고 아버지로

게임을 끝내고 컨트롤러를 내려놓았을 때, 나는 한동안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다. 크레토스와 아트레우스는 집으로 돌아왔고, 여정은 끝났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벽에 그려진 예언, 라그나로크의 예감, 그리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오딘의 정체까지, 모든 것이 다음 이야기를 예고했다.

'갓 오브 워(2018)'는 단순히 액션 게임이 아니다. 이건 한 남자가 자신의 과거와 대면하고, 괴물에서 인간으로, 그리고 아버지로 거듭나는 성장 드라마다. 크레토스는 더 이상 신을 죽이는 자가 아니다. 그는 아들을 지키고, 아들에게 더 나은 삶을 물려주려 애쓰는 한 사람의 아버지일 뿐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과거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변화를 선택했다.

이 게임이 특별한 이유는 스펙터클이 아니라 감정에 있다. 화려한 전투와 웅장한 보스전도 있지만, 진짜 여운을 남기는 건 크레토스가 아들의 손을 잡는 순간, 아트레우스가 아버지를 이해하는 순간, 그리고 둘이 함께 미래를 향해 걷는 마지막 장면이다.

몬스터의 반복이나 전투 컷신의 단조로움 같은 아쉬움은 분명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이 게임은 강력하고 감동적이다. 이건 액션 게임의 새로운 기준을 세운 작품이고,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가장 진솔하게 그린 작품이다.

게임이 끝난 후에도 나는 자꾸만 그 숲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